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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으로 망명한 백계 러시아인(Белая эмиграция, White émigrés)은

1917년 러시아 혁명과

그 후 이어진 내전(1917~1922)에서

볼셰비키(붉은 군대)에게 패배한 후

중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로 흩어진 사람들입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중국의 하얼빈, 상하이, 톈진, 베이징 등지에서

정착했습니다.







1. 주요 정착지와 생활


하얼빈(Harbin)


러시아 극동 철도 건설: 원래 러시아 제국이 건설한 중국 동청철도(Китайско-Восточная железная дорога, KVZhD)와 관련해 이미 러시아계 인구가 많았고, 백계 러시아인의 대규모 유입으로 "러시아 도시" 같은 분위기를 형성함.

사회·문화 생활: 러시아식 학교, 교회, 신문, 극장 등이 존재했으며, 한때는 ‘러시아 망명 정부’ 수립 논의도 있었음.

경제활동: 철도 관련 직업뿐 아니라 무역, 상점 운영, 예술·음악 활동 등으로 생계를 유지.




상하이(Shanghai)


상하이 국제 조계(International Settlement)에는 러시아 난민들이 비교적 쉽게 정착할 수 있었고, 약 2만여 명의 러시아인이 살았음.

일부는 상류층 생활을 했지만, 다수는 어려운 삶을 살며 레스토랑, 나이트클럽, 공장에서 일함.

특히 러시아 여성들은 댄서, 웨이트리스, 간호사 등으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




톈진(Tianjin)과 베이징(Beijing)


톈진에는 러시아 조계가 있었으며, 러시아 정교회와 러시아 학교도 운영됨.

베이징에는 소규모 러시아 공동체가 형성되었으며, 주로 소규모 장사나 서비스업에 종사.





2. 정치적 상황과 어려움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본이 만주국을 세우자, 하얼빈의 러시아인들은 일본군과 협력할지 여부를 두고 갈등을 겪음.

1930년대 후반 스탈린의 대숙청 때
소련으로 돌아간 일부 백계 러시아인들이 숙청당함.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 공산당이 승리하면서 백계 러시아인들은 중국을 떠나야 했고, 많은 이들이 미국, 호주, 프랑스 등으로 재이주함.





3. 현재의 흔적


중국에는 여전히 러시아 정교회 건물, 공동묘지, 일부 후손들이 남아 있음.

하얼빈의 성 소피아 대성당(Собор Святой Софии) 등은 당시 러시아 공동체의 흔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축물.










결론적으로,

중국의 백계 러시아인들은

초기에는 비교적 독립적인 사회를 유지했으나,

정치적 변화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중국을 떠나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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